어릴적부터 나는 악필이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쓴 충효일기에 쓴 글씨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 적어도 성의는 써서 쓴 - 글씨체인데, 그 뒤로는 글씨체가 점점 지렁이와 한 몸이 되기 시작했다.
중학생 즈음엔 글씨를 필기체처럼 휘갈겨 쓰느라 나조차 내가 쓴 글들을 해석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부모님께서 내게 초등학교 저학년용 글자연습 책을 사주시기도 하셨다. 물론 한 번도 적어본 적이 없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어릴적 부터 어머니께서 만년필로 글을 자주 쓰셔서 그 모습이 부럽고, 정말 명필이시라 저 펜을 쓰면 나도 저렇게 될까 싶어 한 번 쓰게 해달라고 졸랐었지만, 쓰기 어려운 펜(에다가 비싼 펜)이라 어렸던 내게 펜을 잘 내어주시지 않으셨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내게 만년필을 하나 주셨다. 입문용으로 굉장히 싼 만년필을 하나 주셨는데, 그 때 부터 '쓰는 재미'에 빠져서 수학 문제까지 죄다 만년필로 풀었다. 물론 애석하게도 만년필을 쓴다고 명필이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쓰는 재미에 빠지고 만년필을 몇 개 더 구매하고 연습장 닳도록 아무거나 막 적어대다 보니 글씨체가 많이 호전된 것 같다. 이젠 명필이고 나발이고 악필만 탈출하고싶은 마음 뿐이지 싶다.
첫 만년필 연습 글이다 보니 서두가 길었는데, 위 시는 부산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한 시인님께서 학교에 인문학 특강을 하러 오셔서 낭독해주신 시다. 죄송하게도 존함은 생각 나지가 않는다.
인문학특강을 하나도 빠짐 없이 들어본 사람으로서 시인이 오시면 십중팔구 졸린 분이었고, 그 시인님도 애석하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즈음 이 시를 낭독해주셨는데, 순간 정수리까지 소름이 돋으며 잠이 확 달아났다.
갑자기 누군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하며 내 귀에 속삭이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날 뒤로 내가 무력감에 휩싸이거나, 무언갈 포기하려 하거나 하면 누군가 내게 다가와
"거 봐, 너도 북어였지!"
하고 소리치는 기분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시다.
아무래도 처음 쓰는 글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오래 머리에 담고 다니던 시를 적어보고싶었다.
Ps. 여담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찾아보려다 북어와 복어를 헷갈려 찾는데 많이 애를 먹었다. 사진으로 보니까 완전 다르더라.